[광주 여행] 김덕령 장군의 혼 충장사, 예향 광주 무등산수박(무등산수박생산조합)
2012. 09. 01.(土)
충장사(Chungjangsa shrine)
이곳은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의병(義兵)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충장공 (義兵將 忠壯公)
김덕령(金德齡) (1568-1596) 장군의 사우(祠宇) 및 묘역(墓域)이다.
충장공은 조선선조(朝鮮宣祖) 원년(1568)에 광주 충효리(忠孝里) 옛이름 석저촌(石底村)에서
김붕변(金鵬變)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자라면서 당대석학 우계성혼(牛溪成渾) 선생에게 수학하였다.
선조 25년 (1592) 임진왜란이 일아나자 담양(潭陽) 지방에서 의병 5,000여명을 모집하여 출정하였다.
이에 당시 전주(全州)에 내려와 있던 광해군(光海君)으로부터 익호장군(翼虎將軍)의 군호(軍號)를
받았다. 선조 28년 (1595) 고성(固城) 지방에 상륙하려는 왜군을 격퇴하여 선조로부터 충용군(忠勇軍)
이란 군호(軍號)를 받았다. 이후 장문포에서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과 수륙 연합전에 참가한 것
을 비롯하여 진해, 고성(鎭海, 固城) 지방을 방어하였다. 또한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장군과
여러차례에 걸쳐 왜군을 무찌르니 장군의 위명(威名)은 날로 높아갔다.
선조 29년 (1596) 이몽학(李夢鶴)의 반란을 토벌하였으나 그와 내통한 충청도 순찰사(忠淸道 巡察使)
의 무고로 투옥되어 옥사하였다.
현종(顯宗) 2년 (1661) 장군의 억울함이 신원되어 관직이 복구되었다. 그리고 현종9년 (1668) 에는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숙종(肅宗) 6년 (1680) 에는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정조(正祖)13년 (1789)
에는 의정부 좌찬성(議政府 左贊成)에 추증되었다.
정조 12년 (1788) 에는 장군의 드높은 충효(忠孝)를 기리고자 사당(祠堂)을 건립하여 배향하는
한편 충장공(忠壯公)의 시호(諡號)를 내렸다.
헌종(憲宗) 8년 (1842) 에는 장군이 태어난 마을 석저촌을 충효리로 바꾸도록 하고, 표리비를 내려
이를 널리 알리도록 하였다. 본 사우와 묘역은 1975년 2월 건립되었으며 특히 장군의 墓를 현재의
장소로 이장할 때 발굴된 의복1괄(8점)이 국가중요민속자료 제111호로 지정되어 유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김덕령 장군
본관은 광산. 자는 경수(景樹). 아버지는 붕섭(鵬燮)이다. 형 덕홍(德弘)과 함께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고경명(高敬命)과 연합하여
전라도로 침입하는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전주에 이르렀다가 어머니를 공양하라는 형의 권유에 따라 귀향했다.
1593년 다시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세력을 떨쳤다. 1594년 전주에 있던 세자 광해군으로부터
호익장군(虎翼將軍)의 호를 받고, 이어서 선조로부터 초승장군(超乘將軍)의 군호를 받았다.
그뒤 남원에 머물다가 진주로 옮겼는데 조정에서 의병을 통합하여 충용군에 속하도록 하여,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영남 서부지역의 방어임무를 맡았다. 곽재우와 협력하여 수차에 걸쳐 적의
대군을 무찔렀고, 1595년에는 고성(固城)에 상륙하려는 일본군을 기습하여 격퇴시켰다. 1596년 도체찰사
윤근수(尹根壽)의 노속(奴屬)을 장살(杖殺)하여 투옥되었으나, 왕명으로 석방되었다. 그해 다시 의병을
모집하여 반란을 일으킨 이몽학(李夢鶴)을 토벌하려 했으나, 오히려 이몽학과 내통했다는 충청도순찰사
종사관 신경행(辛景行)의 무고로 서울에 압송되어 옥사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민첩하며 신용(神勇)이
있었다고 하여 용력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많다. 1661년(현종 2) 신원(伸寃)되었다.
1668년 병조참의에 추증되었으며, 1681년 병조판서가 더해졌다. 광주 벽진서원(碧津書院)에 제향되었는데,
의열사(義烈祠)로 사액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무등산
광주광역시 도심의 동쪽에 에워싸고 솟은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으로 1972년 5월 22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해발 1,187m의 무등산은 호남정맥 마루금이며 무등산 최고봉인 천왕대(지왕봉) 일대는
서석대, 입석대, 규봉 등 수지절리상의 암석이 석책을 두른 듯 치솟아 장관을 이룬다.
또 마치 옥세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새인봉은 장불재에서 서쪽 능선상에 병풍같이 바위절벽으로
이뤄져 있는데 산악인 중 암벽을 즐기는 분들과 암벽훈련장으로 유명하다. 무등산의 특징이라면
너덜이라고 할 수 있다. 천왕봉 남쪽의 지공너덜과 증심사 동쪽의 덕산너덜은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경관을 연출한다. 옛궁궐의 진상품 이었던 무등산 수박은 광주의 또 다른 자랑이다.
개량 수박의 출하가 끝난 8월 중순 이후 추석 전후에 출하되고 있다.
무등산 수박의 유래
무등산 수박은 1,230~1,240년경 고려인 홍다구가 몽고에서 종자를 가져와 개성지방에 재배하다
무등산으로 옮겨 재배된것은 약 350년전으로 추정되며 광주지역 유일의 진상품으로 오늘날에도
귀한 과일로 알려져 있다.
무등산 수박의 특성
과피색은 진초록이며 무늬가 없다. 모양은 타원형으로 10~30 kg의 대형과일이다. 과피는 두텁고
탄력성이 강하며 성숙과정에서 과육이 1~2 cm정도 틈이 형성되기도 한다. 종자는 크고 백색이며
눈에 검은 점이 있다. 전통적인 재배방법의 보전에 따라 천연적이고 자연적인 맛을 함축하고 있으며
특히 감칠 맛의 느낌이 오래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
무등산 수박의 희귀성과 연구결과
무등산 이외의 지역에서는 전혀 생산되지 않으며 무등산내에 서도 경작조건이 맞는 곳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또 한 포기에 하나의 무등비과 밖에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귀하고 신비스러운
과일이다. 무등산 수박은 항산화기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기능성 성분인 라이코펜(55 mg/kg이상)
과 이뇨와 신장기능 개선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시트룰린(2,200 mg/kg 이상)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자유로운 산행 다니엘 愛鄕 광주 근교 추억의 장소를 여행함으로 여러 정보를 공유하고자 한다.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혼 "충장사"
머리보다 큰 광주 "무등산 수박"
위치 : 광주광역시 북구 송강동 13(062-613-5407) 충장사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399-2번지 무등산수박생산조합(판매장, 062-266-8565)
찾아가는길 : 대전→ 호남고속도로→남광주 IC→광주외곽순환도로(두암)→산수오거리→ 지산유원지 방향→무등산 옛길→제4수원지→헐먼기도원 방향→충장사→충효동 방향 →금곡부락→무등산수박
대중교통편 : 광주시내버스 1187(광천터미널→무등산장 行)
G 1187 (지선)-배차간격:18 분-15 → R 첨단09 (급행간선)-배차간격:8 분-6
광주역(동) 승차 → 금남로5가역 하차 → 금남로5가역 승차 → 증심사 하차
광주시내버스 187(장등동→연천 行) 총거리: 7.8 km, 통과정류장: 14 개
상세 내역은 하단 버스 시간표 참조
[광주 여행] 김덕령 장군의 혼 충장사 전경과 조감도
[충장사 전경]
[충장자 조감도]
[광주 여행] 김덕령 장군의 혼 충장사, 예향 광주 무등산수박 관광지도
[무등산 일대 관광지도]
[광주 시내 출발 충장사 찾아가는길 상세]
[무등산 수박 생산조합 찾아가는길]
[광주 여행] 김덕령 장군의 혼 충장사, 예향 광주 무등산수박 대중교통 시간표
[무등산 순환버스 시간표]
[무등산 순환버스 주요 경유시점]
관람시간 : 50分 내외(다니엘 기준)
휴관일 : 신정, 설 및 추석 당일 外 공지 정보없음
입장료 : 무료, 주차료 무료
web site : mudeungsan.gwangju.go.kr
기타정보 : 충장사 內 전통 제사 체험 행사 가능(9월 14일 금요일)
떡과 음식 무료 제공
무등산 수박 택배 가능, 기타 인근 가사문학관, 생태공원, 소쇄원 연계 관광 가능
김덕령 장군의 혼 충장사, 예향 광주 무등산수박(무등산수박생산조합)기행은
자유로운 여행 테마와愛鄕의 광주 여행의 일환으로 방문하였다.
[후기 일부에 친절한 화살표를 했으며 사견을 적었으니 오해가 없길 바라며 참고용으로만 사용]
많은 사람들이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충장사을 찾아오지만 주변 정비가 되지
않고 홍보 부족으로 그저 쓱 스쳐가는 정도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현실이다.
충장사는 광주 시민이 사랑하는 이들과 드라이브 코스쯤 생각하는것 같다.
재정적 지원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는 法이다.
충장사는 10년전쯤 지겹게 왔던곳이다. 하지만 포스팅(기록)은 한번도 하지 않았던 곳이다.
NOW, 내가, 왜? 무슨 프라브럼으로 여기, 나우, 가는거지?
여행이란...
여행은 준비 과정도 간단하지만 쉽게 나서긴 쉽지 않다. 무엇보다 여행의 참맛, 그것을 알기 위해 단순히
가뿐한 마음으로 떠나지만 이내 피로로 되돌아오기 일 수 있다. 많은 여행지침서가 있지만 정확한 정보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다니엘이 생각하는 여행은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에서 교육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새롭고 흥미로운 발견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힐 수 있다.
또 무엇보다 사람을 통해 발견하게 되고, 여행 전보다는 그 후에 지혜로운 본성을 지각하게 된다.
비전을 발견하고, 세상을 평화적으로 바라보게 되며, 무언가에 이성적으로 다가서고,
소통 유대관계에 있어서도 여행이 큰 몫을 한다.
광주 本家 방문과 집안 행사로 진잠家를 출발하여 호남고속도로를 달린다.
本家에 가기 前 작은누님과 조카들과 저녁 약속을 했지만 시간이 남아서 드라이브 겸 짬 여행을 한다.
선택한 곳이 광주 무등산 옛길(지산유원지, 4수원지, 충장사) 무등산장 방향 코스이다.
지산유원지를 들려 케이블카를 타려는데 오늘은 "케이블카 점검"이다.
무등파크 호텔을 구경한 後 꼬불꼬불한 무등산 옛길을 따라 충장사 인근에 도착한다.
▲ 충장사 입구 문정휴게소
참 오래된 휴게소 매점이다.
간판만 바뀌고 형태는 10년전과 다를바 없는듯 싶다.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음료라도 구입하고 싶었지만 경기 둔화로 지갑을 닫는다.
(정류장)
▲ 충장사 정류장과 주변
생태공원, 가사문학관 방향은 직진이고 우따는 무등산장 길이다.
(무등산 옛길)
▲ 무돌길
제주에는 올레길이있고 지리산에는 둘레길이있고 무등산에는 무돌길(4구간)이 있다.
광주와 담양, 순창을 경유하는 길이며. 무등산 둘레길인 무돌길은 총 51.8km이다.
자유로운 산행 다니엘이 시간이 활여하여 완주해야 겠다.
[무돌길 전체 지도]
주변을 살피고 충장사 입구로 돌아온다.
▲ 충장사 주차장
10여대 가량 소화할 수 있는 작은 주차장이 있다. 요금은 FREE이다.
안부에 자유로운 산행 다니엘의 당당한 친구 멸치를 주차한다.
▲ 진입路
인근에 민족정기를 함양하기 위하여 세워진 충장사 안내문이 있다.
▲ 충장사 일주문(입문)
친절한 화살표는 설명 한다.
직진 방향은 김덕령 장군의 유뮬관이 있고 좌따 방향에는 영정건물이 우따방향에는 문화해설사 집 있다.
관람순서는 정답이 없으며 본인의 취향을 따르면 된다.
(입구 邊 연못)
(문화관광 해설사 집)
상시근무는 토, 일, 공휴일이고 평일 10:00~17:00까지 근무이다.
062-226-0108로 문의하면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참고로 관광해설사 여자분은 전남 담양 수북면 분이다.
▲ 충장공 신도비
충장공 김덕령장군의 훌륭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광산 金氏들이 2004년 2월 23일 충장사 경내에
충장공 신도비를 세웠다고 한다.
참 우렁찬 碑이다.
▲ 충장사 안내도
김덕령 장군의 업적과 안내도를 잘 읽어 본다.
곽재우 장군에 나의 지인의 절친(곽유나 님)에게 전화를 한다.
어쩜~ 그리 전화를 오래 하는지 기다리는 사람 죽는줄 알았다.
저런~
▲ 유물관
김덕령 장군의 유물관이 있다. 내부를 구경하기로 한다.
유물관은 장군의 유품인 의복(민속자료 111호)과 관이 보관되어 있다.
(입구 충장공 김덕령)
▲ 충장공 유사
1791년 정조왕의 명으로 김덕령장군 관련 글을 모아 편찬한 책 이라고 한다.
▲ 김덕령 장군 친필
한글이 친필이 아니라 한문이 친필이다. 김영섭 후손님이 기증한 중요한 자료이다.
한문은 국문과 틀려 필체를 보면 사람의 기개(氣槪, spirit)를 알수 있다.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이 묻어 있다.
▲ 의복
김덕령 장군이 활동시기 의복이다. 철력, 직령, 남성용 저고리와 바지가 전시되어 있다.
▲ 관곽
관곽은 김덕령 장군의 시신을 모셨던 당초의 내관과 외곽이다.
조금 섬뜩하지만 장군의 진취적 기상을 생각하며 문화적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유물관을 나와 외삼문 방향으로 이동한다.
▲ 외삼문
김덕령 장군 영정이 있는 곳으로 가는 외삼문이다.
▲ 외삼문 통과 넓은 마당
(외삼문 지나 다니엘 인증)
(신난 표정 다니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동당과 서당
외삼문 지나 넓은 안부 동쪽에 위치한 사당이다.
좌청룡 우백호 처럼 東, 西 방향으로 사당이 있으며 第를 모시는 곳이다.
이번 9월 14일 금요일 충장사에서 第를 지낸다고 한다.
▲ 영당
김덕령 장군의위패와 영정이 봉안된 곳으로 건물양식은 일출목 이익공 겹처마, 팔작지붕 형식을 취한 듯 싶다.
▲ 정려비각
정조(1788년)는 정려비를 세우라는 명을 하였으며 충효리라는 마을 이름까지 지어 내렸다고 한다.
이 碑는 충장공 김덕령 장군과 그의 부인 흥양이氏, 兄 김덕홍, 弟 김덕보 등 일가족의 충효와
절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과 비각이다.
그외에도 광주사직공원 내 1596년 9월 옥중작으로 장군의 억울한 심정을 읊은
"춘산곡" 시문을 적은 춘산곡시비가 있다.
시비 내용은 "춘산에 불이나니 못다핀 꽃 다 붙는다. 저뫼 저불은 끌물이나 있거니와 이몸에 내없는 불 일어나니 끌물없어 하노라"
▲ 영당 前 백일홍
백일홍이 아름다워 꽃잎을 만지는 다니엘 모습이 사랑스러워 인증을 했나 보다.
(위패와 영정)
(향)
▲ 향 2개 점화
억숙하게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누구든지 성냥으로 향을 피울 수 있게 배려했다.
(김덕령 장군 묘소 가는 門)
(되돌아 본 영당)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외롭지 않을듯 싶다.
(담벼락)
(묘소 前 계단)
(떨어진 현판)
패실의 현판이 비바람에 견디지 못했나 보다.
▲ 김덕령 장군 묘소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하고 내려선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아멘~
여기서 자유로운 산행 다니엘 쉬어가는 page 상식 이야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유래 알기
아미타 부처는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한다는 부처로서 아미타란
이름은 산스크리트의 아미타유스(무한한 수명을 가진 것) 또는 아미타브하(무한한 광명을 가진 것)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한문으로 아미타(阿彌陀)라고 음역하였고, 무량수(無量壽)·무량광(無量光) 등이라 의역 하였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에서는, 아미타불은 과거에 법장(法藏)이라는 구도자(보살)였는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願)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한 결과 그 원을 성취하여 지금부터 10겁(劫) 전에
부처가 되어 현재 극락세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처는 자신이 세운 서원(誓願)으로 하여 무수한 중생들을 제도하는데, 그 원을 아미타불이 되기 이전인
법장보살 때에 처음 세운 원이라고 하여 본원(本願)이라고 한다. 모두 48원(願)인데, 이 48원의 하나하나는
한결같이 남을 위하는 자비심에 가득한 이타행(利他行)으로 되어 있어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를 이룩하고
있는 이 부처의 특징을 말해주고 있다. 그 가운데 13번째의 광명무량원(光明無量願)과 15번째의
수명무량원(壽命無量願)은 아미타불의 본질을 잘 드러내 주고 있으며, 18번째의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은
“불국토(佛國土)에 태어나려는 자는 지극한 마음으로 내 이름을 염(念)하면 왕생(往生)하게 될 것”이라고 하여
중생들에게 염불(念佛)을 통한 정토왕생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리고 관세음 보살은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한다는 불교의 보살로 산스크리트로 아바로키테슈바라
(Avalokitevara)이며, 중국에서 뜻으로 옮겨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자재(觀自在)·관세자재(觀世自在)·
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썼는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은 구역이며 관자재는 신역인데,
산스크리트 '아바로키테슈바라', 곧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본다면 관자재가
그 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찍부터 관세음보살로 신앙되어 왔으며 관음보살이라
약칭하였다. 그래서《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을 관음보문품(觀音普門
品) 또는 관음경(觀音經)이라 일컫는다.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觀照)하여 보살핀다는 뜻이다. 결국 뜻으로 보면 관세음이
나 관자재는 같으며 물론 그 원래의 이름 자체가 하나이다. 보살(bodhisattva)은 세간과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성자(聖者)이므로 이 관세음보살은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구제하는 보살(救世菩薩), 세상을 구제하는 청정한 성자(救世淨者), 중생에게 두려움 없는
마음을 베푸는 이(施無畏者), 크게 중생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이익되게 하는 보살(大悲聖者)이라고도 한다.
▲ 나오는길 邊 담벼락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넋과 혼을 기르는 충장사를 경건하게 구경하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인근 충효동 방향에 있는 금곡부락 무등산수박(무등산수박생산조합)으로 향한다.
▲ 금곡동 무등산수박생산조합 주차장
무등산수박 공동직판장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있다.
(직판장 주소)
▲ 직판장 전경
위암감 있는 데이 라이트 밝은 멸치를 당당하게 주차하고 내부로 들어간다.
▲ 수박 직판장 입구
수박형상 바지와 상의를 입고 응대하시는 아주머니가 인상적이다.
역시 직업 의식(홍보와 판매)이 투철하시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양해를 구한 後 초상권을 침입했다.
그래도 포즈는 있으시다. 좋으시나 보다.
▲ 전시된 무등산수박들
▲ 엄청 큰 수박
수박 과피에 라벨지에 kg이 적혀 있다. 이놈은 19 kg 짜리 이다.
무등산 수박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생물이므로 구입 후 바로 드셔야 하며 냉장보관,
수박을 자를떄는 가로로 잘라 먹어야 한다고 한다.
(튼실한 녀석들)
(크기도 다양)
▲ 크기 인증
자유로운 산행 다니엘 머리보다 훨 크다.
거인나라 소인이 된 기분이 든다.
▲ 일렬 정리
무등산 수박의 가격을 알아 본다.
▲ 무등산 수박 가격
보통 8 kg 짜리는 없고 9 kg가 최소 수량이라고 한다. 9 kg이나 24 kg이나 맛은 같다.
맛을 보기 위해 9 kg를 구매하려면 사전 예약을 하고 오전에 구입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신다.
물론 24 kg짜리도 희귀하여 없다. 평균 17~21 kg가 가장 많다고 한다.
구입처는 무등산수박생산조합 062-266-8565, 010-2681-9970
jtyk@hanmail.net 으로 연락하면 예약 및 판매(택비) 가능하다.
무등산 수박 장아찌와 수박즙도 판매하고 있다.
리콜은 가능하며 덜 익었거나 부패하였을 경우 한하며 수박 표면에 붙어 있는 견출기 상하의 번호와 수박 내용물을 사진을 찍어 핸드폰 또는 이메일로 연락주셔야 가능함을 명심하면 된다.(견출지 꼭 있어야 함)
▲ 주차장
무등산 수박 판매장 내부를 구경하고 주차장으로 돌아 온다.
무등산 수박은 맛과 멋의 고장 예향 광주의 정성으로 재배하였다고 홍보하고 있다.
자유로운 산행 다니엘은 수박생산조합 관계자 분에게 어떤 금품과 향음도 제공받지 않았다.
인터넷에 정확한 정보를 올리는 것이다.
다시 창평 방향으로 이동하여 작은 누님 가족들과 합류하여 맛있는 저녁을 먹고 광주 本家로 돌아온다.
자유로운 산행 다니엘 김덕령 장군의 혼 충장사와
예향 광주 무등산수박(무등산수박생산조합) 여행을 즐겁게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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